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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 1장 1 ~ 2절]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의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살더니

 

룻기 1~2장은 한 가정의 실패와 상실에서 시작되지만, 그 끝은 하나님의 회복과 인도하심으로 이어진다. 엘리멜렉의 가정은 흉년을 피해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으로 갔다. 그러나 그 선택은 평안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두 아들 말론과 기룐도 죽었다. 나오미에게 남은 것은 두 모압 며느리뿐이었다. 모든 것을 잃은 것처럼 보이는 절망의 자리였다.

사사들이 치리하던 시대에 이스라엘 땅에 흉년이 들었다. 유다 베들레헴에 살던 엘리멜렉은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 말론, 기룐을 데리고 모압 지방으로 갔다. 베들레헴은 ‘떡집’이라는 뜻을 가진 곳이지만, 그곳에 양식이 없자 그는 이방 땅 모압으로 향했다. 먹고살기 위한 현실적인 선택이었지만, 하나님의 백성이 약속의 땅을 떠나 모압으로 간 것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일이었다.

신명기에는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이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압은 신앙적으로 가까이하기 어려운 땅이었다. 그럼에도 엘리멜렉은 생존의 문제 앞에서 모압으로 갔다. 사람은 때로 삶의 목적을 향해 간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방향을 잃은 채 앞으로만 나아갈 때가 있다.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하나님께로 향하지 않는 길은 아무리 현실적으로 보여도 결국 생명의 길이 아닐 수 있다.

 

[룻기 1장 3 ~ 5절]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그들의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그들이 거기에 거주한 지 십 년쯤에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모압에 머무는 동안 엘리멜렉은 죽었다. 이후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은 모압 여인 오르바와 룻을 아내로 맞이했다. 그러나 약 10년이 지난 후 두 아들마저 죽고 말았다. 나오미는 남편과 두 아들을 모두 잃었다. 한 가정의 가장과 아들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오미는 두 며느리와 함께 남겨졌다. 빈곤과 고통, 상실과 죽음이 그녀의 삶을 덮었다. 인간적으로 보면 모든 것이 끝난 상황이었다.

 

[룻기 1장 6절]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그러나 하나님은 절망의 자리에서도 다시 길을 여신다. 나오미는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셔서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이 소식은 절망 가운데 들려온 회복의 소식이었다. 꺼져가는 촛불처럼 보이는 인생도 하나님께서 붙드시면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상한 갈대와 같은 인생도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면 다시 설 수 있다.

삶의 방향을 틀어 하나님께로 향할 때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다.

나오미는 두 며느리와 함께 모압을 떠나 이스라엘로 돌아가려 했다. 그러나 길에서 두 며느리에게 각자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고 권했다. 오르바는 나오미에게 입을 맞추고 자기 백성과 신에게로 돌아갔다. 반면 룻은 나오미를 떠나지 않겠다고 고백했다. 그녀는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라고 말했다. 이것은 단순한 인간적 의리의 표현이 아니라 신앙의 결단이었다.

 

[룻기 1장 15~16절]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룻은 자신의 고향과 부모와 익숙한 삶을 떠나 나오미와 나오미의 하나님을 따르기로 했다.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 룻은 모압 여인이었지만, 그녀의 중심에는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믿음이 있었다. 하나님은 이 고백을 들으셨고, 이방 여인 룻을 주목하기 시작하셨다.

나오미가 베들레헴을 떠날 때는 남편과 두 아들과 함께였다. 그러나 돌아올 때는 모든 것을 잃고, 모압 여인인 며느리 룻과 함께였다. 사람들의 눈에는 실패한 인생처럼 보였을 것이다. 남편도 잃고 자녀도 잃고 재산도 잃은 여인, 게다가 곁에 있는 며느리는 이방 여인이었다. 주변의 시선은 결코 따뜻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시선과 다른 방식으로 일하신다.

 

[룻기 1장 22절]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의 며느리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

 

나오미와 룻이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는 마침 보리 추수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시간적 우연이 아니었다. 가난한 사람,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는 추수 후 남은 이삭을 주워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다. 룻은 자신과 시어머니 나오미를 위해 보리밭으로 나갔다. 주변의 시선과 자신의 처지를 의식하기보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했다.

 

[룻기 2장 3절]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룻은 밭에서 이삭을 줍다가 엘리멜렉의 친족인 보아스의 밭에 이르게 되었다. 성경은 이를 “우연히”라고 표현하지만, 믿음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의 섭리였다. 사람의 눈에는 우연처럼 보여도, 하나님 안에서는 정확한 인도하심일 때가 있다. 룻이 간 밭은 나오미 가문의 기업 무를 자와 연결되는 보아스의 밭이었다.

보아스는 룻을 보고 사환에게 그녀가 누구인지 물었다. 사환은 룻이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소녀이며, 아침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이삭을 줍고 있다고 말했다. 룻은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녀가 한 일은 특별해 보이지 않았다. 그저 이삭을 줍는 일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목하시면 작은 순종도 큰 은혜의 시작이 된다.

보아스는 룻에게 그녀가 남편이 죽은 후 시어머니에게 행한 일과 부모와 고국을 떠나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 온 일이 자기에게 분명히 알려졌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분의 날개 아래 보호받으러 온 룻에게 온전한 상을 주시기를 축복했다. 룻의 믿음과 헌신은 이미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었다. 보아스는 그녀를 단순한 이방 여인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께 피한 믿음의 사람으로 보았다.

 


[룻기 2장 5~7절]
보아스가 베는 자들을 거느린 사환에게 이르되 이는 누구의 소녀냐 하니
베는 자를 거느린 사환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소녀인데
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

 

보아스는 룻이 곡식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더라도 나무라지 말라고 명령했고, 일부러 이삭을 조금씩 뽑아 떨어뜨리라고 일꾼들에게 지시했다. 보아스는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가는 통로가 되었다. 룻의 성실함과 믿음 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고, 나오미와 룻의 삶에는 회복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보아스는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으며, 장차 룻과 결혼하여 오벳을 낳는다. 오벳은 이새의 아버지이고, 이새는 다윗의 아버지이다. 결국 룻은 다윗 왕의 계보에 들어가고, 더 나아가 메시아의 족보에 이름이 기록된다. 라합과 룻은 모두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었지만,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구속사의 중요한 자리에 세워졌다.

 

[룻기 2장 11, 12절]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룻기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출신과 배경이 아니라 중심과 믿음을 보신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룻은 세상을 좇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했다. 그녀는 화려한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시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이삭을 주웠다. 그러나 그 작은 순종과 성실함을 하나님은 크게 보셨다. 사람에게는 하찮아 보이는 일이 하나님께는 회복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나오미는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보아스를 통해 그녀의 가문을 회복시키셨다. 룻은 이방 여인이었지만, 하나님께 피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복된 계보 안에 들어갔다. 보아스의 밭에 이르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을 다시 일으키시고, 작은 순종을 통해 큰 계획을 이루신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도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한다. 삶이 돌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께 향하면 그 길은 인도하심의 길이 된다. 모든 것을 잃은 자리에서도 하나님은 다시 시작하게 하신다. 세상을 좇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시며, 그분께 나아가는 자에게 상 주시는 분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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